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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칼라스에 대한 레나타 테발디의 회상

limeon 2024. 7. 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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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의 라이벌 관계 

 

나는 무대 위에 서 있을 때마다, 그 눈부신 조명과 관객들의 환호 속에서 어릴 적 걷지 못하던 기억이 떠오르곤 했다.

 

(레타나 테발디,Renata Ersilia Clotilde Tebaldi, 1922~2004)는 소아마비로 어린시절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무대위에 올라 맘껏 노래를 부르는 그 많은 순간들이 마치 꿈만 같았다.

 

마리아 칼라스의 라이벌 레타나 테발디

 

하지만 내 이야기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내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소프라노가 있었다. 그녀는 바로 마리아 칼라스( Maria Callas, 1923~1977).

 

마리아와 나는 처음부터 '라이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시작했다. 그녀는 그리스계 미국인으로, 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유복하지 않은 환경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우리 둘 다 어머니의 강력한 서포트로 성악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비슷한 운명이었다.

 

마리아는 무대 위에서 항상 화려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녀의 독특한 목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녀의 이름은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마리아 칼라스

 

반면 나는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사람들은 우리를 '세기의 라이벌'이라 불렀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스칼라 극장에 처음 서게 되었을 때, 나는 토스카니니의 지휘 아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마리아는 나의 대역으로 스칼라 극장에 서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비교하며 어느 쪽이 더 뛰어난지 평가했지만, 나는 그녀의 재능과 열정을 존경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었고, 서로의 삶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마리아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온갖 루머와 오나시스와의 결혼등의 가십의 중심에 있었지만, 나는 은퇴 후 조용한 삶을 선택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를 '라이벌'로 기억했지만, 우리는 그 이상의 관계였다.

 

한 번은 내가 오페라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Adriana Lecouvreur)의 연주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왔을 때, 마리아가 나를 껴안아 준 적이 있었다.

레타나 테발디와 마리아 칼라스가 함께한 사진

 

그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경쟁자가 아닌 친구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무대위에서 노래해야 하는 서로의 외로움과 화려한 삶의 이면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마리아가 오나시스와 헤어지고 쓸쓸한 시간을 보낼 때, 나 역시 강아지 뮤와 하녀 티나와 함께 조용한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우리의 삶은 서로를 닮아 있었다.

 

이제는 무대 위의 환호와 갈채가 아닌, 평범한 하루하루가 나를 위로해준다.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후 난 외로움을 느낀다.

 

위대한 오페라의 여신 마리아와의 추억은 내 마음 속에 언제나 특별한 자리로 남아 있다.

우리는 '라이벌'이었지만, 동시에 서로의 가장 큰 이해자였으니까.

 

오늘도 밤하늘에는 별이 떨어진다.

 

<바로가기> 마리아 칼라스의 연인 산박왕 오나시스 

 

마리아 칼라스의 연인(2/2), 선박왕 오나시스 -  July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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